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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프리뷰 극단 청맥 <이날 이때 이즈음에 (원제:테라코타) > 시간을 배반하다 1초, 2초, 3초, 4초… 매초, 매분, 매시간이 칼같이 사라진다. 그렇게 시간이라는 것은 언제나 정확하고 공평하게 똑같이 흘러 간다. 해가 뜨고 해가 지며 달이 뜨고 달이 진다. 그 모든 시간의 흐름 속에 인간이 끼어들 공간은 없다. 인간은 어떤 시간에 해를 가할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때로 어떤 시간은 너무나 길고 어떤 시간은 너무나 짧다. 바다가 물을 묶었 풀어내는 하루의 시간일지라도 하염없는 기다림으로 인해 영원보다 길고 어느 날로 기억된다. 나무가 꽃을 떨어내고 열매를 베어 무는 일 년의 시간일지라도 달콤하고 촉촉하여 언제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찰나의 순간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렇게 인간의 기억은 시간을 위해하고 배반하는 시간 바깥의 시간으로 분한다. 알 없는 일이다. 시간 속의 시간을, 시간 사이의 시간을, 시간 너머의 시간을 인간의 영혼은 그토록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을는지도. 일정 : 10월22일�10월31일 평일8시, 토3시7시, 일3시, 22일 3시 공연 있음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3관 : 백하룡 연출 : 윤우영 출연 : 김호정, 남윤길, 백익남, 이영진, 김태경 문의 : 070-4136-3738 극단 청맥의 2010 창작초연작품 시리즈 <이날 이때 이즈음에>는 2009년 <코펜하겐>의 윤우영 연출과 배우 김호정, 그리고 <파행>의 백하룡 작가와 최순화 무대∙의상 디자이너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 다. <이날 이때 이즈음에>는‘경계성 인격 장애’를 앓고 있던 한 인물의 실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연 극으로 멸망기 백제의 왕실, 일제강점기 남해 부둣가 주막, 현재 서울의 외곽 연립주택 옥탑 방에서 벌어지는 각기 다른 에피소드가 어우러져 확신할 없는 순환구조 -마치 인생과 같은-를 보여준다. 완전할 수 없는 인간의 완전해지고자 하는 욕망과 그 욕망의 허망함은 더할 수 없는 연민을 그러모으며 무대와 무대 아닌 곳 시간을 합쳐낸다. 무대 위의 시간을 보며 관객들은 속에 투입된다. 이제 시간은 무대를 넘고, 현재 넘고, 역사를 넘는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우주 속을 떠도는 헐겁고 불쌍한 한 명의 인생으로 귀결된다. 비리고 서럽고 붉어 푸른 사내와 여자 서러운 비린내가 나는 사내와 푸른 사과향이 나는 여자가 있다. 아니 지울수없 비린내가 나는 여자와 발가벗겨진 사과향이 나는 사내가 있다. 사내와 여자는 백제의 의자왕과 그의 애첩 은고이다. 의자왕은 백제가 처한 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 은고는 사내의 귀를 가리고 눈을 가리고 입을 막는다. 보고 싶지 않은 것 보지 않게 해주기에 은고는 진정 의자왕의 여자다. 아니 보고 싶지 않을 것을 보게 했어야 은고는 진정 의자왕의 여자가 되었을 것이다. 운명은 그들을 파멸로 이끈다. 아니 그들이 운명을 파멸로 이끈다. 이제 사내와 여자는 일제 강점기 남도 바닷가에서 마주한 장돌뱅이와 그에게서 도망친 창녀이다. 장돌뱅이는 갈데없는 땅의 끝까지 그녀를 찾으러 왔지만, 몸 속에 바람이 가득한 그이는 끝에 서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죽음 같은 바 닷바람 사이로 사라지는 것이 여자인지 사내인지 없다. 사랑해야 할 사람 사랑할 있다면 그것이 사랑이겠는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기에 온당하다. 다시 사내와 여자는 서울 외곽의 연립주택 옥탑 방에 사는 용접공과 그의 아내이 다. 부모도 친구도 없는 용접공에게 어느 친구라는 사람이 처음 찾아온다. 아 내는 그가 반갑다. 그러나 남편은 친구가 반갑지 않다. 남편에게 과거는 없어져야 시간들이었다. 알려져서는 시간들이었다. 그는 두려워했고, 두려워했기 에, 그 모든 일들은 일어나고야 만다. 그의 두려움이 운명의 원인이었을까? 아니 면, 운명이 그 두려움의 원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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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극단 청맥

<이날 이때 이즈음에(원제:테라코타)>

시간을 배반하다1초, 2초, 3초, 4초… 매초, 매분, 매시간이 칼같이 사라진다. 그렇게 시간이라는 것은 언제나 정확하고 공평하게 똑같이 흘러

간다. 해가 뜨고 해가 지며 달이 뜨고 달이 진다. 그 모든 시간의 흐름 속에 인간이 끼어들 공간은 없다. 인간은 어떤 시간에

도 해를 가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때로 어떤 시간은 너무나 길고 어떤 시간은 너무나 짧다. 바다가 물을 묶었

다 풀어내는 하루의 시간일지라도 하염없는 기다림으로 인해 원보다 길고 긴 어느 날로 기억된다. 나무가 꽃을 떨어내고

열매를 베어 무는 일 년의 시간일지라도 달콤하고 촉촉하여 언제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찰나의 순간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렇게 인간의 기억은 시간을 위해하고 배반하는 시간 바깥의 시간으로 분한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시간 속의 시간을, 시간

사이의 시간을, 시간 너머의 시간을 인간의 혼은 그토록 자유롭게 유 하고 있을는지도.

일정 : 10월22일�10월31일 평일8시, 토3시7시, 일3시, 22일 3시 공연 있음

장소 : 학로 예술극장 3관

작 : 백하룡 연출 : 윤우

출연 : 김호정, 남윤길, 백익남, 이 진, 김태경

문의 : 070-4136-3738

극단 청맥의 2010 창작초연작품 시리즈 <이날 이때 이즈음에>는 2009년 <코펜하겐>의 윤우 연출과 배우

김호정, 그리고 <파행>의 백하룡 작가와 최순화 무 ∙의상 디자이너의 만남으로 기 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

다. <이날 이때 이즈음에>는‘경계성 인격 장애’를 앓고 있던 한 인물의 실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연

극으로 멸망기 백제의 왕실, 일제강점기 남해 부둣가 주막, 현재 서울의 외곽 연립주택 옥탑 방에서 벌어지는

각기 다른 에피소드가 어우러져 확신할 수 없는 순환구조 -마치 인생과 같은-를 보여준다. 완전할 수 없는

인간의 완전해지고자 하는 욕망과 그 욕망의 허망함은 더할 수 없는 연민을 그러모으며 무 와 무 아닌 곳

의 시간을 합쳐낸다. 무 위의 시간을 보며 관객들은 그 속에 투입된다. 이제 그 시간은 무 를 넘고, 현재

를 넘고, 역사를 넘는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우주 속을 떠도는 헐겁고 불쌍한 한 명의 인생으로 귀결된다.

비리고 서럽고 붉어 푸른

사내와 여자

서러운 비린내가 나는 사내와 푸른 사과향이 나는 여자가 있다. 아니 지울 수 없

는 비린내가 나는 여자와 발가벗겨진 사과향이 나는 사내가 있다. 사내와 여자는

백제의 의자왕과 그의 애첩 은고이다. 의자왕은 백제가 처한 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 은고는 사내의 귀를 가리고 눈을 가리고 입을 막는다. 보고 싶지 않은 것

을 보지 않게 해주기에 은고는 진정 의자왕의 여자다. 아니 보고 싶지 않을 것을

보게 했어야 은고는 진정 의자왕의 여자가 되었을 것이다. 운명은 그들을 파멸로

이끈다. 아니 그들이 운명을 파멸로 이끈다.

이제 사내와 여자는 일제 강점기 남도 바닷가에서 마주한 장돌뱅이와 그에게서

도망친 창녀이다. 장돌뱅이는 더 갈데없는 땅의 끝까지 그녀를 찾으러 왔지만, 몸

속에 바람이 가득한 그이는 그 끝에 서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죽음 같은 바

닷바람 사이로 사라지는 것이 여자인지 사내인지 알 수 없다. 사랑해야 할 사람

만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이 사랑이겠는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기에

온당하다.

다시 사내와 여자는 서울 외곽의 연립주택 옥탑 방에 사는 용접공과 그의 아내이

다. 부모도 친구도 없는 용접공에게 어느 날 친구라는 사람이 처음 찾아온다. 아

내는 그가 반갑다. 그러나 남편은 친구가 반갑지 않다. 남편에게 과거는 없어져야

할 시간들이었다. 알려져서는 안 될 시간들이었다. 그는 두려워했고, 두려워했기

에, 그 모든 일들은 일어나고야 만다. 그의 두려움이 운명의 원인이었을까? 아니

면, 운명이 그 두려움의 원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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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e Korean Theatre Review 2010. 10

한 사람이 사라질 때

모든 시간 속에서 흩어지는 구슬

작가 백하룡

경계성 인격 장애로 살인사건을 일으킨 그 사람의‘사건’에 관해서 연민을 느꼈어요. ‘이 사람

의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싶었죠. 전생개념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딱 하고 깨졌을 때… 삶에

관한 모든 것, 시간을 초월한 모든 것들이 나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사라지면서 구슬이 확 하고 다 쏟아져 나오는 것과 같은. 완벽한 공간에서 떨어져 나올 때 그

곳에서 버려지고 쫓겨나거나 사라지는 것은 성경적이기도 하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전개되고

되풀이되는 것은 불교적이기도 하죠.

콜테스의「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이라는 희곡이 있는데요, 그 내용과 상관없이 제목과 같은,

그런 숲에 이르기 직전의 고요 같은 결말을 그리고 싶었어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

그러나 논리로서 설명할 필요를 느끼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일상이 아닌 일상의 상징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관객들은 그 상징을 애증을 가지고 볼 수도 있고 연민을 가지고 볼 수도 있고

허망함을 가지고 볼 수도 있겠죠.

결국 무언가 결핍이거든요. 저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은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

고는 생각해요. 결핍된 존재라서 계속 뭔가를 잡으려고 한다고. 그런데 안 잡히죠. 잡을 수 없

으니까 그것은 충족할 수 없는 욕망이죠.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거든요. 기독교적으로 보면

구원을 바란다고 볼 수도 있고.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시간과 언어에 해서 그리고 역사에 해서 다른 것들을 보여주려 애

썼어요. 저는 무 의 언어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연극의 언어는 일상어와 약간은 달라야 해요.

일상적인 언어의 연극이 요즘엔 세일 수도 있지만 저는 다르게 쓰고 싶었어요. 불필요한 말

이라도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무 위에서 존재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리고 시간에 해서

는 백제 시 라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간이 저는 고려시 나 조선시 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라고 느껴지더라고요. 실제 시간과 상관없이 어떤 고 의 삶과 현재의 삶의 중간을 보

여주는 시기는 그때가 아닌가. 무엇보다 연극은 그 모든 시간들을 무 위에 다 구현할 수 있

잖아요. 또한 동시에 구현할 수도 있고요. 연극은 시공간이 관통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가

장 좋은 장르가 아닌가 싶어요. 결말은 계속 고민중이예요. 관객들이 윤회라고 느끼는 것을 제

가 아니라고 반박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사람마다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결말로 마무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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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혹여 핏물일지라도

삶 속에, 삶과 삶 사이에, 삶과 삶 너머에 다른 삶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알지 못할 뿐,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

을 만나는 것이 처음이 아닌 것 같고, 당신과 헤어지는 것이 처음이

아닌 것 같다. 당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처음이 아닌 것 같고, 당

신을 죽이는 것이 처음이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간을 사는 것은 처음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사실은 어렵

고 생경하다. 그러나 느낌은 편안하고 익숙하다. 시간을 배반한다 하

여도 무엇이 실체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낮의 나뭇잎의 색이

진짜인지 달마저 사라진 밤의 나뭇잎의 색이 진짜인지 우리는 밝혀낼

수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내 손에 닿은 너의 뜨거움, 그것 하나

뿐이다. 그것이 혹여 핏물일지라도.

_이가원기자([email protected])& 사진_극단청맥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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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전문 극단 수레무 가 몰리에르의 <스카펭의 간계>로 또 한 번의 비상(飛上)을 꿈꾼다.

1992년 극단 수레무 의 창단 작품이었던 <스카펭의 간계>는 (1999년 <파워 스카펭>이라는

제목으로 공연한 바 있으나) 창단 20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극단 수레무 의 내일을 담금

질 하는 또 다른 시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몰리에르의 연극작업은 극단 수레무 의 그

것과 닮아있다. 꼬메디아 델 아르떼의 이동무 를 지칭하는‘수레무 (wagon stage)’와 같

은 이름의 극단 수레무 는 13년간 지방을 돌며 공연을 했던 경험 그 자체가 공연의 창조과정

이었다고 생각한 몰리에르처럼, 합숙과 레퍼토리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어디든지 자유롭게 떠

나 공연을 할 수 있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코미디 전문 극단이라는 수식을 달고

있는 극단 수레무 와 300여 년 전 공연됐던 몰리에르의 희극은 이전 만남이 그러했듯 현

적 양식을 덧입은 극단 수레무 만의 색깔로 그려져 공연의 기 감을 높이고 있다.

비극으로 성공자하고 했던

프랑스의 익살꾼 몰리에르

궁정 실내장식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몰리에르라는 예명을 얻기까지, 몰리에르(본명 쟝-바

티스트 포클렝)의 생애에 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1973년 <상상병 환자> 공연 당시

무 에서 쓰러져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 외에는 정설이 별로 없다. 몰리에르가 연극에 입

문하게 된 많은 일화 역시 설득력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궁정 실내장식업의 가업을 물려받

아 부유한 부르주아로서 평탄한 삶을 포기하고 마들렌느 베자르 가족과 함께 알뤼스트르

테아뜨르 극단을 조직해 연극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 외에는.

프랑스의 천재 희극작가인 몰리에르의 초기작품들이 부분 프랑스 비극의 창립자로 불리

는 코르네이유의 연극이었던 이유는 그가 희극보다는 비극으로 성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극으로 이미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던 극단들에 의해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루

브르에서 코르네이유의 <니코메드>를 공연했을 때부터 희극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비극

공연이 국왕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고 느낀 몰리에르는 프로그램에 없었던 소극 <사랑에 빠

진 박가>를 여흥거리로 공연하겠다고 즉석에서 제의했고, 이 공연으로 몰리에르는 희극 분

야에서 큰 명성을 얻는다. 이후 <웃음거리 재녀들>과 <스가나렐> 같은 소극의 성공은 몰리

에르 극단의 위치를 확고히 해주었고, <사랑의 원한> 등의 작품으로 그는 파리 연극계

표적인 희극작가로서의 명성을 다져간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는 비극에 연연했었고, 몰리에르를 질투한 적 자들은 몰리에르가 비극

에서는 성공할 수 없는 프랑스 제1의 익살꾼이라며 빈정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에

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몰리에르는 희극작품과 거의 동일한 양의 비극작품을 무 에

올리지만, 주공연보다 여흥거리로 제공되는 소극이 더 관객의 인기를 끌게 된다. 결국 주인

공이 죽음에 처한 위험만 없을 뿐 비극적 분위기를 띤 희극 <동 가르시 드나바르>의 참패

이후 몰리에르는 희극이 자신의 길임을 인정한다. 이후 <남편들의 학교>와 <훼방꾼들> 그리

고 그의 표작이랄 수 있는 <타르튀프>, <수전노>, <서민귀족>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300

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희곡은 꾸준히 사랑받는 명작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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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극단 수레무 <스카펭의 간계>몰리에르 작품에는 희극의 첫 번째 요소가 있다

일시 : 10.28�11.9 평일8시, 토4시7시, 일4시, 월쉼

장소 : 서강 메리홀 극장

작 : 몰리에르 번역 : 박 옥

연출 : 김태용

출연 : 김동곤, 백원길, 최진석, 김정호, 진선규, 박지홍, 이은아, 유병은, 신지현

문의 : 010-5662-6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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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4 The Korean Theatre Review 2010. 10

몰리에르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 <스카펭의 간계>

희극의 특징은 풍자와 과장 그리고 무엇보다 캐릭터에 있다. 이러한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 바로 <스

카펭의 간계>다. 앞서 언급했던 로 희극을 도외시하고 비극을 경외했던 풍조는 당시 17세기 프랑스의 고전주

의 미학 때문이다. 즉 시간, 장소, 행동의 일치를 요구하는 삼일치, 규범과의 일치인 적합성, 사실성의 추구를

요구하는 유사성 등을 특징으로 한 고전주의에서 비극이야말로 이와 같은 원칙을 가장 잘 드러낸 장르 기 때

문이다.

이와 달리 몰리에르의 희극은 자유롭고 감각적이었다.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사랑했고, 현 에 이르러 세 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획득하며 공연되고 있다. 이러한 몰리에르의 희극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배우,

즉 캐릭터에 있다.

<스카펭의 간계>는 사랑에 빠진 두 쌍의 남녀가

희 의 모사꾼인 스카펭의 도움으로 권위적이고

탐욕스러운 아버지들에게 결혼 승낙을 받게 된

다는 간단한 이야기다. 굳이 주제를 물고 늘어지

면,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인간의 이기적이

고 어리석은 속성에 한 경종 정도다. 이처럼

단순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몰리에르의 철학과

위 함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빈틈없는 인물

구축과 구성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만끽할

수 있는 관극의 요소는 히스토리가 아닌, 이를

담는 배우들의 캐릭터에서 찾을 수 있다.

재치와 계략으로 위험을 모면하며 모든 사건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스카펭의 책략을

엿보고, 고지식하고 권위적며 돈과 권력, 명예를

중시하는 아르강뜨와 제롱뜨의 우매함이나, 사

랑하는 여인을 얻기 원하나 어리석고 허약할 뿐

10년의 기다림, 기 했던 1년의 작업 과정, 그 결과는?

극단 수레무 김태용 연출은 이 작품을 다시 올리기까지 10여 년의 세월을 기다렸다고 말한다. 완성된 코메디의 연기술과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시점이 필요했고, 지난 10년 동안 <꼬메디아 에피소드>, <삐에르 빠뜨랑>, <파스 릴레이>, <청혼>, <곰> 등

의 작업들이 바로 그런 준비과정이었다고 전한다. 극단 수레무 의 <스카펭의 간계>는 그렇게 철저한 계획 속에서 준비된 공

연이다. 올해 초, 배우 김동곤, 최진석을 비롯해 백원길, 김정호, 진선규 등 연극계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하는 것은

물론, 수개월간 합숙을 하며 공연을 만든다는 소식은 작품에 한 기 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이제 남은 것은 공연의 결과다.

짧지 않은 연습과정을 거쳤고, 한명, 한명 그들의 출연만으로도 작품을 기 할 수 있는 배우들이 모 으니, 이들이 만들어내

는 앙상블은 이전 것보다 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 극단 수레무 의 <스카펭의 간계>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_최윤우기자([email protected]) & 사진_극단수레무 제공

뾰족한 수없이 전전긍긍하며 스카펭에게 의지만 하고 있는 옥따브와

레앙드르 등 <스카펭의 간계>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캐릭터로

살아있다.

인물들은 과장돼있고, 관계는 우연이라고 하기에 지나칠 만큼 억지스

럽다. 그런데도 그런 부자연스러움이 더 없이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

발하기도 한다.

코미디의 첫 번째 요소는 캐릭터다. 그리고 여기에 템포와 정서가 뒷

받침되면, 희극은 관객들의 공감 를 만들어낸다. 마치 나폴리의 부둣

가 옆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스

스로 입소문을 만들어내고 싶을 만큼, 연극 <스카펭의 간계> 속 인물

들은 무 에서 살아 있는 듯하다. 몰리에르 작품 중에서도 가장 스펙

터클한 느낌이 많은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중력의 법칙을 이용한

등퇴장에 있다. 배우들은 널뛰기나 시소를 이용해 등장하는가 하면

공중에서 덤블링을 하며 퇴장하기도 한다. 코러스는 힙합 음악에 맞

춰 비보이 댄스를 추고, 화의 한 장면을 차용한 움직임 등 극단 수

레무 의 <스카펭의 간계>는 고전희극이라는 탄탄한 구성안에서 다양

한 극적 장치를 활용해 코메디극의 리듬감을 더했다.

무엇보다 1671년 초연된 <스카펭의 간계>가 300여 년의 지난 오늘날

에도 여전히 공연될 수 있는 이유는 이 작품이 그저 관객을 웃기는

것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몰리에르는 그의 희극 속에서 어

느 한 시 에 국한되지 않는 인간의 속성에 한 날카로운 비판의식

을 담아냈다.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 속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

고 있는 세 한 인간 심리, 얼토당토않은 스카펭의 간계에 왜 아르강

뜨와 제롱뜨는 넘어갈 수밖에 없었을까, 그 심리변화의 묘미를 찾아

보는 것도 이 작품의 또 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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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분투하는 청춘들에게

바치는 이야기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걸 표현해내기는 어

렵다. 게다가 정신병 환자의 생각과 행동을

보여줘야 하는 건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연

습실에 모인 연출과 배우들은 치열하게 싸우

고 있었다. 쉽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 못

했다. 진짜 심장이 뛰는 연극이 탄생하리라는

예감이 든 건 도망치듯 연극을 만들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투하는 청춘들에게 바치는 연극이라는 타이

틀에 맞게 모두 분투하고 있었다.

연극 <내 심장을 쏴라>는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동명의 소설을 무 로 옮긴 작품이다. 정신분열

증과 공황장애로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해 온 수명과 부유하지만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승민이 정

신병원에서 만난다. 수명은 미쳐서 갇힌 자이며 승민은 갇혀서 미쳐 가는 자이다. 시력을 잃어가는 승민은 과

거에 패러 라이딩을 하며 자신의 시간 속에서 살았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탈출을 꿈꾼다.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수명은 간절히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가는 승민을 보며 서서히 삶에 한 열정을 회복한다. 수명은

승민과 함께 정신병원을 탈출하고 승민의 마지막 비행을 돕는다. 시간이 흘러 수명은 세상을 향해 당당히 외

친다. “날 쓰러뜨리고 싶다면 내 심장을 쏴. 그렇게 못 하면 난 절 로 안 죽어!”

남산예술센터 <내 심장을 쏴라>네 심장이 뛰는 시간, 그게 진짜 네 시간이야!

일정 : 10월7일~10월24일 평일8시, 토3시/7시, 일3시(월쉼)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원작 : 정유정 극본 : 고연옥

연출 : 김광보

출연 : 김 민, 이승주, 이남희, 윤 걸, 손진환, 이용근, 문욱일

박노식, 강일, 윤다경, 정승길, 권택기, 백지원, 최현숙, 김송일, 김순애, 최하

문의 : 758-2102

세상이 나를 가두고 나를 지운다고 여겨질 때, 내 삶에 원히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해질 때, 두려

워하지 말고 눈을 감자. 그리고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그다음 이렇게 외쳐보면 어떨까.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살아 있는 놈이 될 거라고. 연극 <내 심장을 쏴라>는 세상과 나로부터 도망치는 걸 멈

추고 심장이 뛰는 진짜 너의 시간 속으로 뛰어들라고 말한다. 살아 있다는 건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므로 무서워할 필요 없이 용기를 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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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걸고 내 인생을 상 하고 있는가

“수명은 수동적이고 비겁하고 나약한데 세상을 개척해가는 승민을 보면서 변화해가는 인물입니다. 우

리가 다 미친놈일 수도 있다고 연출이 말했는데 공감해요. 세상에 적응 못하고 도망치는 모습이 정신

병 환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다 있잖아요. 이 작품은 내 심장을 걸고 인생을 상 할 수 있

는 용기나 의지가 있냐는 질문을 던져요. 반짝이는 나만의 것을 가지고 전진하고 있는지, 내 심장을 쏘

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는지, 목숨 걸고 살고 있는지를 내 자신에게 물어보면 부끄러워지죠. 연극

이 저를 각성시키는 것 같아요.”-배우 김 민(이수명 役)

내 시간 속에서 나로 살고 싶어

“제가 처음 승민을 만났을 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저 신 뭔가 행동해준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오디션도 더 열심히 준비하게 됐고요. 승민이란 인물은 사랑받지 못한 가정환경 때문에 어린 시절 방

화를 저지르는 등 정신병을 앓다가 패러 라이딩을 하면서 자유를 느끼고 자신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

려고 하죠. 승민은 병원에서 나가 다시 날아야 한다는 목표가 분명한 인물이어요. 저렇게 갇혀 있는 환

경에서 뚫고 나가려고 애쓰는 승민을 보면서 관객들이 나는 지금 어떤가를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배우 이승주(류승민 役)

가둔 자와 갇힌 자의 현실

“저는 연극이 여전히 사회적인 발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요. 그런 점에서 <내 심장을 쏴라>는 사회구조의 축소판이

라고 할 수 있죠. 이 연극은 가둔 자와 갇힌 자에 한 의미

를 담고 있어요. 이 이야기를 분투하는 청춘들에게 바친다

고 했지만 이 작품이 청춘들에게만 말하는 건 아니에요. 삶

을 살아가면서 목적을 상실한 인간에게 삶의 원동력을 가지

라고, 힘들더라도 삶에 목표의식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겠

느냐고 말을 걸죠. 삶의 원동력을 타자로부터 받는 게 드물

기는 하지만 있잖아요. 제 삶을 돌아보더라도 그런 경험이

있고요. 현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벽이 점점 더 많

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벽에 부딪혔을 때 인간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수명과 승민이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것 같아

요. 작업하면서 힘들었던 건 인물의 내면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쓴 소설에서 관계의 미학으로 풀어가야 하는 연극

으로 바꾸는 과정이 어려웠어요. 주제도 무거운 편인데 가

볍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려고 했습니다.”-연출 김광보

너 살아있니? 라고 물어주는 이야기

“우리 사회의 밑바닥 인물을 그릴 때 두 가지 난관이 있어요. 하나는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고정된 시각 때문

에 밑바닥 인물에게 동정심을 갖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또 하나는 제가 그리고 싶은 세계에 구원이

나 자유를 바라지만 실제 그곳엔 그게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나는 왜 밑바닥 인생을 그리려고 하느냐는 의문과 만

나게 돼요. 거기엔 제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에요. 나하고 다른 세계가 있다고 구분 지으려 했던 안일함

과 낭만적인 생각이죠.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 정유정 씨도 저와 같은 생각으로 을 썼을 거란 동질감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밑바닥에서 사는 사람들이 구원과 자유를 향해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 평범한 사람들도 싸울 수 있

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고 봐요. 너 살아 있니? 너 누구니? 라고 물어주고, 내 형상이 살아 있는 내 이야기를 가지

라는 열정을 주는 점에서 이 작품이 이야기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작가 고연옥

슬픔을 뛰어넘어 진실로 존재하기를

끝없는 고통과 원치 않는 슬픔이 왜 내 삶에 존재하는가? 나는 왜 바닥까지 떨어지는 경험을 해야 하는가?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뿌리째 흔들어 놓는 질문과 맞닥뜨려있다면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슬픔이 슬픔을 아픔

이 아픔을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하여 자신의 슬픔을 뛰어넘어 진실로 존재한다면, 누군가의 슬픔을 덧

입을 줄 안다면 우리는 더 큰 자아로 나아갈 수 있다. 바로 자신을 연민하지 않으며 울 수 있는, 어둠이 무서워 떨

지라도 밤을 지새울 수 있는, 희망 없는 내일이 오더라도 새벽을 기다릴 줄 아는 자가 될 것이다.

_최성문(객원기자, [email protected]) & 사진_남산예술센터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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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2010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폭풍>, <바냐 아저씨>, <고골의 꿈>

연극과 삶이 하나가 되는 무

<폭풍(The Storm) - 오스트로프스키의 스톰>

일정 : 10월21일, 22일 8시 / 10월23일 4시

장소 : 학로예술극장 극장

원작 : 알렉산더 오스트로프스키

연출 : 레프 에렌부르크

단체 : 러시아 푸쉬킨 드라마 시어터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이하 SPAF)가 10주년을 맞았다. 해마다 축제 시즌이면 SPAF 이름 하나만으로 관객들

은 망설임 없이 극장 티켓을 손에 쥐었다. 기 에 어긋나지 않는 작품들은 살아있는 연극 무 를 실감케 했

고, SPAF의 무 에서 만났던 연극은 삶 그 자체 다. 올해도 어김없이 SPAF는 연극과 삶을 하나로 끌어안

는다. 연극이 그저 무 위 또 다른 세상에 멈추지 않고 우리의 삶, 그 어딘가에 사뿐히 어깨를 기댄다. 해외

초청작 중 연극은 네 작품. 이중 10월4일에 막을 내리는 몰리에르 단막극 시리즈를 제외한 <폭풍 (The

Storm) - 오스트로프스키의 스톰>, <바냐 아저씨>, <고골의 꿈> 세 작품을 소개한다.

2120 The Korean Theatre Review 2010. 10

아름다운 작품이다. 1860년 오스트로프스키가 발표한 원작은 당시의 러시아 사회를 통

렬하게 비웃었다. 러시아 볼가 강 근처, 한 상인과 결혼한 여자가 남편과 어머니의 오만

한 위선에 고통 받아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는 이야기. 하지만 연출가 레프 에렌부르크

는 원작의 1/4만을 살려내 사뭇 다른, 하지만 지극히 평번한 화두를 끄집어냈다. 이제,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질식해가는 여주인공과 더불어, 사랑에 목마른 평범한 사람

들의 비극이 시작된다. 2008 러시아 황금마스크 페스티벌 작품상에 빛나는 <폭풍>이다.

새롭게 태어난 <폭풍>의 배경은 여전히 볼가 강 근처. 하지만 이제 막 조명이 들어온 무

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강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저 기다란 널빤지를 얼기

설기 늘어놓은 낡은 집이 전부. 흡사 시소처럼 위태롭게 서 있는 그 널빤지는 볼가 강

과 그들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기우뚱 그것을 타고 넘어 강과 더불어

삶을 위하고, 눈물도 웃음도 물살에 흘려보낸다. 어쩐지, 그들은 늘 아슬아슬해 보인

다. 그리고 어느새, 무 뒷벽 거울이 시퍼런 강물을 비추어내면, 이제 삶은 그야말로

아찔해지고 만다.

어머니는 부인이 남편에게 좀 더 순종적이어야 한다고 아들을 다그친다. 그 아들은 아

이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다 말하고, 그의 부인은 그런 어머니도 남편도 답답하

기만 하다. 남편이 잠시 모스크바로 떠난 사이 부인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

국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무 위에 홀로 선 모든 이들이다. 납득이 가지 않을 만큼 아

들에게 집착하는 어머니도, 부인에게 외면당한 채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도, 심지어 책

없이 주인집 아들을 바라보며 엉뚱한 짓을 일삼는 하녀도, 다들 사랑이 고프다.

들키기엔 너무나 비루한 것 같아 꽁꽁 숨긴 진심과는 상관없이, 우습고도 슬픈 그들의

삶은 저 푸른 볼가 강처럼 흘러만 간다. 언제 눈물을 쥐어짰냐는 듯 몰려다니며 웃고

떠드는 소소한 즐거움이 일상을 물들이고, 격정과 분노는 깔깔거리는 소음에 잠시 곁을

내어준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애달프게 흐르는 음악에서는, 환청인가 싶을 정도로 섬뜩

한 미치광이의 웃음이 배어나오지만, 그 누구도 서로에게 손 내 지 못한다. 결국 누군

가는 떠나야 했고, 누군가는 죽어야 했으며, 남겨진 자들은 울어야 했던 폭풍과도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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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바냐 아저씨>다. 이번엔 체홉의 희곡「바냐 아저씨」의 근간이 되

었던「숲귀신」을 끌어들 다. 「숲귀신」의 등장인물들과 1막을 시작하는 파

티 장면은 극 전체 분위기를 조금 더 떠들썩하게 만든다. 세레브랴꼬프와

엘레나 부부가 온 이후로 모든 일을 팽개치고 나태한 일상을 보내던 바냐

가족들은 흥겨운 이웃들의 등장으로 인해,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행

복한 것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이 세상 눈물의 양은 정해져있다던가. 누군

가 웃을 때 다른 누군가는 눈물을 훔치는, 또 한 편의 <바냐 아저씨>다.

프랑스 연출가 에릭 라카스타드는 <세자매>, <이바노프>, <갈매기>, <플라토

노프> 등 다수의 체홉 작품들을 연출해왔다. 그리고 2009년, 인물들 간의

갈등과 그들의 끊임없는 감정 변화에 매료되어 수 년 동안 고민한 끝에, 마

침내 <바냐 아저씨>를 무 에 올린다. 한편 연출가와 호흡을 맞춘 OKT/빌

뉴스 시립 극단(前 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 극단)은 2002년 서울국제공연

예술제에서 <불의 가면>을, 2005년 LG아트센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한 바 있다. 세월이 흘러 더욱 깊이 있는 연륜으로 돌아온 배우들의 농

익은 연기는 과연, 심금을 울린다.

무 엔 사이먼 & 가펑클의 노래가 흥건하다. 그들은 서로에게 농을 걸고,

흠뻑 취하도록 마셔댄다. 그리고 어느새 도가 지나친 장난질은 사람들 사이

의 갈등을 슬금슬금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세상에, 나 아닌 타인을 하

는 방식은 오직 증오, 혹은 사랑, 둘 중 하나뿐인 것 같다. 하지만 그나마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증오하고, 내가 증오하는 사람 역시 나를 증오

하니, 어떻게든 화해를 청해볼 수밖에 없다. 처음엔 나를 사랑해달라고 매

달리지만, 이젠 그저 미워하지만 말아달라고 빌어볼 밖에.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죽어줘야 하거나, 내가 죽어야 한다.

세레브랴꼬프의 폭탄 발언을 들은 바냐는 엘레나를 위해 준비했던 장미꽃

에 갈기갈기 분풀이를 한다. 화사한 꽃잎이 너울거리며 바닥을 장식하지만

그들 사이에 남은 건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의 어색한 끝물. 결국 떠날 사람

들은 떠나야만 했다. 마치 기다리기나 한 듯, 모든 이들은 분주하게 무 를

종횡무진하며 그들과 이별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찾아 온 정적. 소냐는, 이

제 당신들과는 상관없는 세상을 살겠다는 듯, 조용히 막을 닫는다. 그 결말

만은 여전히 서러운 또 한 편의 <바냐 아저씨>는 이토록 살기 위한 몸부림

으로 처절하다. 어쨌든 나는 살아가야 하므로.

2322 The Korean Theatre Review 2010. 10

<바냐 아저씨>

일정 : 10월31일 8시 / 11월1일 4시 / 11월2일 8시

장소 : 학로예술극장 극장

원작 : 안톤 체홉「바냐 아저씨」, 「숲귀신」

연출 : 에릭 라카스카드, 다리아 리피

단체 : 리투아니아 OKT/빌뉴스 시립 극단

고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단연 꼭 봐야 할 공연! 네 작품을 순차적으로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즐거움과 더불어, 고골만의 독특하고 그로테스크한 색깔이 완벽하게 조

화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고골의 꿈>은‘결혼’과‘실패’라는 주제를 중심으

로 때론 음울하고, 때론 광기어린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2009 불가리아 아스키 시상

식에서 무 미술상과 음악상을 수상한 만큼, 시청각적 감수성을 건드리는 작품. 마치

수도사와 같은 마음으로 연극 작업에 임한다는, 2008 수원화성국제연극제의 충격적

인 무 , <죽음의 춤>을 선보 던 스푸마토 실험극단이 다시 한국을 찾았다.

사방이 시커먼 가운데 마치 패션쇼의 런웨이를 연상시키는 무 위에 검은 신사 셋이

등장한다. 서로가 서로의 또 다른 자아라도 되는 양, 똑같은 제스처에 똑같은 사를

읊어 는 이들은 극의 내레이터 역할을 한다. 런웨이 뒤쪽 깊숙한 무 는 환상과도

같이 채워지고, 무 아래쪽 작은 쪽문들이 열리면 배우들이 튀어나와 다양한 방식으

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배우들은 최 한 감정을 절제한 채, 무

시무시한 발성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심지어는 어여쁜 소녀들조차도, 말 못하는 강아

지조차도, 섬뜩한 주문을 외우는 것 같은 느낌이다.

네 작품 모두, 등장하는 인물들이 현실이 아닌, 꿈을 살고 있다면 차라리 좋을 것 같

다. 황홀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모순된 감정들이 그들을 지배하지만, 아무리 절규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 삶이다. 넵스끼 거리에서 운명의 여인을 만났다고 믿고 싶은

피스카료프도, 거위 얼굴을 한 여러 명의 부인을 꿈에 본 이반 슈폰카도, 눈앞에 닥친

행복한 결혼으로부터 결국 도피하고 마는 포드카료신도, 국장의 딸 소피를 애모하여

그 자신 스페인의 왕이 되었다고 믿는 포프리시친도, 다른 이들에게 정신이 나갔다는

비난을 듣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허면, 무엇이 그들을 미치게 만들었을까.

이들의 심연 깊은 곳에는 고골 그 자신이 세상에 해 느꼈던 두려움과 실망감, 통제

할 수 없는 갈망이 존재한다. 누구도 그것의 정체를 뚜렷하게 말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 인간은 악마와도 같은 끌림에 사로잡히고 만다. 스푸마토 실험극단은 <고골의

꿈>을 통해 두 눈이 아프도록 자신을 들여다보길 권유한다. 언제고 이성을 잠시 잃은,

가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언행을 하고야 마는, 당신은 정말로 광인인

것일까. 어느 다가오지도 않을 날짜를 일기장에 적어놓고 구원을 바라는 나는, 사회라

는 굴레와 인간이라는 족속이 두려운, 그저 그런 하나의 존재일 뿐인데.

_김슬기기자([email protected])

사진_서울국제공연예술제제공

<고골의 꿈>

일정 : 11월1일~3일 8시

장소 : 남산예술센터

원작 : 고골「넵스키 거리」, 「이반 표도로비치 슈폰카와 그의 이모」, 「결혼」, 「광인 일기」

연출 : 마르가리타 믈라데노바, 이반 도브체프

단체 : 불가리아 스푸마토 실험극단